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(문단 편집) === 주요 이슈 및 진행 경과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1101081110_400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버락 오바마 VS 존 매케인''' || 경선 과정이 마무리되고 본선으로 달려가던 중 민주당에는 역대급 호재가, 공화당에는 역대급 악재가 터지고 만다. 상술한 '''[[2008년]] 9월 [[대침체|세계 금융 위기]]'''였다. 안 그래도 [[2008년]] 당시 [[조지 W. 부시|부시]] 행정부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집권 공화당의 인기도 사이좋게 떨어지던 중에 터진 악재였다. 9월 15일 [[리먼 브라더스]]의 파산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화룡점정이었고 미국민들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을 원망하고 있었다. 오바마와 민주당 측은 이 상황에서 결코 무리하지 않았다. 경선기간 구축한 전국적인 지지조직을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, 현재에 대한 책임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명백히 제시하는 포지티브 전략을 내세웠다. 아울러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[[조 바이든]]을 지목한다. 젊은 패기의 흑인 남성 후보 오바마가 가지는 약점을, 워싱턴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며 외교안보 경험이 풍부한, 노련한 백인 남성 조 바이든으로 만회하는 안정적인 방법이었다. 더구나 바이든은 아일랜드계 가톨릭이기 때문에 전국 선거에서 투표하는 미국인의 25% 정도를 차지하는 가톨릭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과 블루칼라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. 이때까지만 해도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클린턴 부부의 지지층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바마가 바이든을 발탁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. 문제는 공화당이었다. 매케인 캠프는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밀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, 그렇다고 구경만 하다가 백악관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. 원래 매케인은 젊은 신예 오바마의 등장으로 대거 뺏겼던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해 '''[[민주당(미국)|민주당]] 출신''' [[무소속]] 상원의원 조 리버만[* 당시 [[코네티컷]] 연방상원의원. 2006년 상원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패했으나,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승리했었다. 이후 민주당에 복당하지 않고 무소속 신분으로 공화당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존 매케인을 지지했다. 존 매케인의 대선 패배 직후, 결국 무소속 신분을 유지한 채 민주당의 원내교섭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2012년 선거에 불출마하며 정계를 은퇴했다. 이후 [[2016년 미국 대선]]에서는 [[힐러리 클린턴]]을 지지.]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. 문제는 조 리버만은 [[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]]에서 '''민주당 [[앨 고어]] 당시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나갔던 적이 있는 후보'''인 데다가 원래 민주당 출신이었으니 낙태에 대해 찬성하는 발언도 한 적 있었다는 것. 당연히 이 계획이 새어나가자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발 여론이 폭증했고, 결국 이 결정을 무르고 매케인 캠프에서는 보수적인 후보를 새로 찾기 시작했다. 존 매케인은 집안 대대로 군인 가문에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고, 워싱턴의 정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기에 연륜과 경험, 외교안보 부분에서는 절대적인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. 즉, 노련한 매케인에 대비되어 젊어야 하고 대중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했다. 그렇게 해서 공화당이 찾아낸 당시로선 최선의 후보가 [[알래스카]] 주지사로, 젊고 중앙정계나 매스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선함을 가졌으며, 흑인인 오바마에 비교되는 소수자의 상징인 '''여성으로서 흑인 오바마에 맞서 소수자를 상징하고 여성표를 대거 흡수할 수 있으리라 기대'''되었으며 이른바 사커맘으로서 보수 기독교 우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완벽해보'''였던''' 후보 '''[[세라 페일린]]'''이었다. ~~망했어요~~ 사실 페일린의 진가가 드러나기 전에는, 의외의 러닝메이트 지명으로 단번에 매케인과 공화당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처음 기대했던 대로 여성 표심이 대거 움직이는 기미가 보였기에 이 선택은 매우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.[* 실제로 잠시 전국 지지율에서 매케인이 오바마를 역전하기도 했다.] 그러나 매스컴의 주목이 높아진다는 것은 양날의 검. 당연히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언론과의 인터뷰가 잡히게 되면서 뉴페이스 세라 페일린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다. 그 진가는 [[세라 페일린]] 항목 참조. 그렇게 9-10월의 조정기간을 거치면서 페일린의 민낯이 제대로 드러났고 공화당 지지자들조차 멘붕하기에 이르렀다. 페일린 지명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오바마를 오차범위 턱 밑까지 추격한 매케인이었으나 페일린의 병크,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악화되는 경제 상황으로 추격의 모멘텀을 잃어버렸다. 더군다나 매케인의 나이도 걸림돌이었는데, 고령의 매케인이 임기 중 혹여라도 사망하면 그 승계를 페일린이 하게 되는 것이다. 공화당 성향의 중도층들은 이 악몽같은 시나리오에 치를 떨며 투표를 포기하거나 혹은 [[콜린 파월]]처럼 아예 오바마를 찍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